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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이 생각나는 현실근육맨작성일 25-01-11 07:52
<a href="https://mangogift.co.kr/new/shop/detail.php?code=2408954" target=_blank" rel="noopener noreferrer" title="방향제" id="goodLink" class="seo-link">방향제</a>1624년 인조 임금이 율곡에게 “도와 덕을 널리 들어 막힘이 없이 알았고, 백성의 편안한 삶을 위하여 정치의 근본을 세우는 데 평생을 바쳤다”라는 의미로 ‘문성(文成)’이란 시호를 내린 지 올해로 401년이 된다. 사실 율곡의 관직 생활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으나 6조 판서 가운데 4조 판서를 지내면서 백성을 위한 영세불멸의 교훈을 오늘에 남기고 갔다.
<a href="https://mangogift.co.kr/new/shop/detail.php?code=2408954" target=_blank" rel="noopener noreferrer" title="방향제제작" id="goodLink" class="seo-link">방향제제작</a>우리가 율곡을 아홉번 장원한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으로만 알고 있지만 임금이 하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민심을 외면하고 바른 정치를 펴지 못하면 가차 없이 사직소를 올리는 등 직언을 서슴지 않은 신하였다. 임금에게 충언을 하며 아홉 번이나 물러났고, 때가 지나 자신을 위한 충언임을 깨달은 임금은 아홉번이나 율곡을 다시 불러들인 초유의 구퇴구출(九退九出)을 겪기도 하였다. 39세 때 율곡은 오늘날 대통령비서관 격인 우부승지에 임명되자 당시 백성의 고충을 낱낱이 들추어 그 근본 해결책까지 제시한 ‘만언봉사’를 써 올리면서 “만약 저의 해결책을 시행하여 3년이 지나도 나라가 바로 서지 아니하고 백성의 삶이 나아지지 않으면 허위 사실을 날조하여 임금을 속인 죄로 극형도 달게 받겠다”라고까지 했다. 450년 전에는 이런 신하가 임금 곁에 있었다.
<a href="https://mangogift.co.kr/new/shop/detail.php?code=2408954" target=_blank" rel="noopener noreferrer" title="답례품디퓨저" id="goodLink" class="seo-link">답례품디퓨저</a>중국 위나라 신비(辛毗)는 임금 옷자락을 붙들어 가며 바른말을 아뢰었고, 한 나라 주운(朱雲)은 임금에게 바른말을 아뢰다 임금이 화를 내며 끌어 내리려 하자 어전의 난간을 붙들고 버티다 난간이 부러지기도 하였다. 율곡은 임금의 물음에 답을 올리면서 “앞으로 신의 말을 듣지 않으신다면 다시는 소신을 조정으로 부르지 마십시오”라고 했다.
<a href="https://mangogift.co.kr/new/shop/detail.php?code=2408954" target=_blank" rel="noopener noreferrer" title="디퓨저답례품" id="goodLink" class="seo-link">디퓨저답례품</a>이런 충신들이 왜 우리 조정엔 없는가! 신하로서 율곡의 올곧고 충직한 태도, 에두르지 않는 직언,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서슴없이 물러나는 과단성은 우리 조정 대신 너나없이 본받아야 할 값진 교훈이다. 율곡은 오로지 백성을 위해 바른말을 아뢰었을 뿐 임금을 쫓아내도 된다든가, 갈아 치울 수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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